[영화]시저는 죽어야 한다, 왜?

'예술을 알고 나니 이 작은 방이 감옥이 되었구나'

신숙희 기자 컬처리뷰 송고시간 2013/06/02 00:00:00 최종 업데이트 2013/06/08 00:00:00

<시저는 죽어야 한다>

[연합경제]‘나’는 케이를 죽이고 은폐하기 위해 도망친다. 흐르는 강물에 손을 씻어도 손에 묻은 핏물은 가시지 않는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내’가 살인을 하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상황은 쉬이 바뀌지 않는다. 뒤에서 검은 그림자가 ‘나’를 쫓고, ‘나’는 끝없이 도망친다. 급기야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다. 절벽,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다. 수많은 검은 그림자가 목을 조여 온다. ‘나’는 절벽에서 뛰어내린다.

“다음 생에는 도망자로 살지 말아야지.”

내 머리는 곧 딱딱하고 차가운 바위에 떨어질 것이다. 풍경은  비현실적으로 흐리다. 끝났구나, 묘한 슬픔과 쾌감이 스친다. 찰나, 휙 지나가는 파랑새 한 마리를 본다. 실은 그게 새인지, 구름조각인지 그냥 흰 선인지, 주황색인지 회색인지조차 알 수 없다. 무작정 나는 파랑새라고 믿고 싶어 한다. 그 ‘파랑’에 손이 닿기 전에 세상은 암전된다.

눈을 뜬다. 온몸이 땀에 젖어 있다. 꿈이구나, 가슴을 쓸어내린다.

우연이었을까? [시저는 죽어야 한다]를 보러 가기 전날 밤 꾼 꿈이다. 도망을 가며 수없이 생각했다. ‘내’가 왜 케이를 죽여야만 했는가를? 이것이 꿈이라면, 영화라면, 연극이라면, 책 속의 한 구절이라면.

<시저는 죽어야 한다>

영화 [시저는 죽어야 한다]의 원작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저]다. [줄리어스 시저]는 권력, 야망, 우정, 배신, 살인 등 살아가면서 경험할 수 있는 감정과 다양한 인간 관계를 보여주는 걸작이다.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는 이탈리아 출신의 형제 감독 '비토리오 타비아니'와 '파올로 타비아니'를 만나 특별한 방법으로, 특별한 공간에서, 특별한 배우들과 결합해, 아주 특별한 영화 [시저는 죽어야 한다]로 태어난다.

이 영화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현실 속의 중범죄자들이 연극 속의 주인공이 되어 연기를 했다는 점이다. 배역을 맡은 배우들은 마약, 살인 폭력 등 중범죄를 저질러 이탈리아 레비비아 교도소에 수감 중인 재소자들이다.

[시저는 죽어야 한다]는 오디션 과정부터 실제와 동일하다. 재소자들은 갑갑한 감옥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연극 [줄리어스 시저]에 도전한다. 그 중 몇몇 재소자들은 심사위원들의 요구에 따라 멋진 연기를 펼쳤고 합격한다.

시저 역의 지오반니 아르쿠리는 마약 밀매로 2001년 체포되어 17년 형을 선고받았고, 카시우스 역의 코시모 레가는 살인을 저질러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부르투스 역의 살바토레 스트리아노는 카모라 조직 관련 범죄로 14년 8개월 형을 받고 복역 중에 사면 출소했다. 그 외 재소자들도 각각의 사연과 죄과를 안고 있다.

연극 연습을 하던 배우이자 재소자들은 배역에 몰입할수록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괴로워하기도 하고, 동료들과 갈등을 일으켜 연극 연습이 중단되기도 한다.

타비아니 형제는 연극을 올리기 위해 연습하는 배우들의 모습을 각본대로 카메라에 담아내되, 배우들 간에 갈등이 생기면 그 지점에서 멈춘다. 갈등이 일어나는 상황 자체를 다시 재구성해 영화로 찍는다. 이 방식은 특별한 효과를 창출한다.

시저의 암살을 찍는 날 효과는 극대화된다. 실제 갱단에 있었고 살인한 적이 배우들은 '암살 씬'을 찍으면서 그 위로 자신의 과거가 겹쳐지는 것 같은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카메라는 이 지점에서 일어나는 재소자들의 후회와 슬픔과 감정의 파장을 놓치지 않고 담아낸다.

<교도소 교화프로그램 '줄리어스 시저'의 오디션 과정>

영화와 연극과 인생이 만나는 이 지점에, 늙은 노감독들은 보란 듯이 화두를 던져 놓는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사회에서는 필연적으로 관계를 맺게 된다. 오늘 일어난 갈등을 재구성해 본다면 '나'는 어느 지점에서 카메라를 멈추고, 어느 지점에서 다시 연극을 아니 '생'을 시작해야 할까? 안타깝게도 우리에겐 재구성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므로.

그럼에도 연극이 끝난 후 한 재소자는 감방으로 돌아와 “예술을 알고 나니 이 작은 방이 감옥이 되었구나”라고 읊조린다. 그제야 지난 과오를 뉘우치고 죄의 대가를 담담히 받아들인다. 그와 동시에 철창 너머 파란 하늘, 스크린 바깥의 자유에 관해 생각한다. 

신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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